신용장(LC) 자동 검토 — 이제 길드에서 바로서류 업로드 → AI 불일치 분석 → 수정 가이드 제공.
NEW LC 검토 시작하기 →
← 자유게시판

죄와 벌- 라스콜니코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는 스비드리가일로프라는 악인이 등장합니다. 흔히 그는 무신론의 극한으로서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력한 빌런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전당포 여주인을 도끼로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어찌 보면 그에 대한 혐오와 소냐의 사랑이 주인공을 개과천선, 부활로 이끄는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근데 제 생각은 기존의 이런 시각과 많이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는 스비드리가일로프보다 라스콜니코프가 훨씬 더 나쁜 인간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스비드리가일로프를 혐오하는 라스콜니코프가 더 위선적으로 보이며 정작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세간의 그릇된 의혹과 소문에 의해서 그 실체가 왜곡 된 인물로 여겨집니다. 특히나 스비드리가일로프 자체가 자신의 이익과 욕망 실현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드러냄으로서, 이에 대한 타인의 비난을 무시하고 자기 목적을 향해서 가고자 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므로 인해서 실제보다 세간의 평가가 훨씬 더 나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래는 해라체로 제 생각을 정리해 본 글입니다.
1. 편견에 근거해서 극단적 범죄를 저지르는 라스콜니코프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편견으로 선과 악을 판단한다. 또한 그는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타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범한 인간인지?, 아니면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적 초인인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타인을 살해하고 공리주의적 사상을 기반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당포 여주인을 악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사람들의 소문, 상대의 직업과 외모에서 나오는 혐오, 편견에 기반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그는 아무런 죄가 없는, 무고한 인물까지(전당포 여주인의 여동생) 살해한다. 이는 그가 우월주의적 사상에 빠진 것은 물론이며 자기 사상에 대한 기준, 원칙조차도 없었던 부실했던 사람임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난 그가 소냐의 가족을 대상으로 보여주는 선행도 그가 본래 선한 사람이라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심한 자책감과 두려움이 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돈을 불쌍한 사람에게 주므로 인해서 자책감을 덜어내고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 영웅적 초인임을 확인받고 이를 더 강화하고 싶은 심리의 발동으로 여겨진다.
2. 위선적이지 않은 스비드리가일로프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위선을 떨지 않는다. 그는 대놓고 자신이 욕망에 충실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또한 그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끔찍한 악행 의혹들이 있지만 이는 대부분 소문에 근거하고 있을 뿐, 소설 속에서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는다. 아내를 죽였다거나 자신의 하인을 학대하여 죽게 만들었다거나 어린 소녀를 능욕하여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의혹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아내가 뇌졸중으로 죽었다는 의사의 진단을 언급하며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님을 주장했고 또한 자신이 아내를 때린 것은 7년 동안 2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하인, 농노 소녀의 자살에 대해서는 그들이 스스로 죽은 것이며 자신의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그리고 유부남이었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두나에게 추파를 던진 것에 대해서도 자신은 욕정이 강한 남자이며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에 반해 두나에 대한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주장한다. 이 말은 진실일지?, 거짓일지?, 소설상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자기를 상대로 이렇게 변명하는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 큰 역겨움을 느끼는데, 정작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처단하지는 못 한다. 오히려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 치명적 약점을 잡힌다. 사회에 해악을 없애서 다수의 이익을 실현한다는 명분을 자기 자신에게 주입시켜서 전당포 여주인을 도끼로 무참히 살해했던 이가 그 혐오스러운 스비드리가일로프 앞에서는 도리어 쩔쩔 매고 공포에 질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그는 강자에게 약하면서 약자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이를 합리화하려는 인간, 스비드리가일로프보다 훨씬 더 비열한 인간으로 보였다.
3.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돈에 있어서 인색하지 않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사상이나 철학보다는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는 인물이지만 상대방에게 인색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두나에게 돈을 전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 아내가 죽기 전에 두나에게 돈을 남겼기 때문이지만 실상 자신이 직접 나서서, 어렵게 두나를 찾아다니면서 이것을 챙겨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는 두나에게 돈을 빌미로 접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최소한 돈보다는 두나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더 강했던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의 그는 자신의 돈을 가장 불쌍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준다. 이는 죽고 난 이후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돈을 통해서 두나(주인공의 여동생), 그리고 어린 약혼녀의 마음을 얻어 보려고 했으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느낀 결과다. 돈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또한 자기도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으니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고 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두나를 가두고 자신의 힘을 통해서 성적인 욕구,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데에 성공, 절호의 기회를 얻지만 실상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두나에 대한 스토커도 맞고 납치범도 맞지만 강간범이나 살인범은 되지 않았다. 이 소설이 19세기에 나온 소설이었음을 생각해보자. 실상 우리는 20세기, 1990년대에 영화 천장지구에서 유덕화가 오청련을 인질범으로 납치했다가 오청련이 납치범이었던 유덕화를 사랑하게 되는 로맨스를 보고 열광했다. 납치범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상 천장지구 유덕화가 스비드리가일로프보다 더 나쁜 납치범이지 않나?, 그는 오청련을 처음부터 인질 목적으로 납치했다. 반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돈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살아야 했던 상황에서 두나를 보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가 두나에게 남을 돈을 전하기 위하여 두나에게 접근해야 할 의무와 명분도 생겼다. 이를 빌미로 어떤 거래를 하고 싶었는데 두나 본인과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철저히 차단하는 상태였던 바, 돈 전달의 의무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납치, 감금으로 볼 수 있는 시도를 하지만 두나의 의사를 확인한 후에는 모든 것을 포기, 아무런 조건 없이 두나를 보내주었다. 당시가 19세기 제정 러시아였음을 생각해보면, 자기 나름대로의 현실적 선은 지키려고 했었던 인물이 아닌가?, 난 오히려 이 장면을 보면서 이전까지 그에 대한 숱한 의혹들이 그의 집요함과 노골적(품격,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욕망 드러내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나쁘게, 흑화 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에 대한 소문과 별개로 그가 실제 소설 속에서 보여 준 모습은 그랬다. 사상이니 철학이니 사랑이니 하는 위선은 떨지 않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4.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와 소냐의 갱생은 결국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돈 덕분
결정적으로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시베리아에 가서 죄값을 치루고 소냐의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갱생하는 인간으로 그려지는데, 실상 이 모든 것은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소냐의 동생들을 챙기고 소냐에게도 적지 않은 돈을 준 덕분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인간이 준 돈 덕분에 소냐와 함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냐가 라스콜니코프의 갱생에 있어서 절대적 역할을 한 인물로 해석되는 것이 이 소설임을 감안하면 소냐 없는 라스콜니코프의 갱생은 가능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결과적으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자살이 그들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을 열어 준 것이다. 더군다나 이 모든 것은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원치 않았는데 타의 또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죽는 순간에도 나름 꼼꼼하게 소냐의 동생과 소냐를 챙긴 배려한 덕분이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