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정희를 탐구해봤습니다.
박정희 얘기만 나오면 항상 두 가지로 갈리는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대한민국을 먹고살게 만든 대통령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고.
저도 궁금해서 박정희가 태어난 시점부터
1979년 죽기 전까지를 연도순으로 쭉 살펴봤습니다.
자료마다 해석이 워낙 달라서
특정 진영의 평가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보고
제 나름대로 평가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정희는 한쪽으로만
평가하기 상당히 어려운 인물이라고 봅니다.
1917~1929년
박정희는 191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학교 교육도
일본 식민통치 체제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어 교육이 이루어졌고 조선의 역사와 민족의식을
억누르는 교육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박정희가 어린 시절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가지고 지금의 기준으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 시대에 조선인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선택지가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대적 배경이고
이후 박정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별도로 봐야 합니다.
1930년대
박정희는 교사로 근무하다가 군인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만주국 군관학교 등을 거쳐 만주국군 장교가 됩니다.
여기서 박정희를 평가할 때 애매하게 넘어가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가 식민지 시대였다는 사정은 고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박정희가 일본 제국의 군사조직에서 활동했다는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운동가의 길을 선택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 시기의 박정희를 평가할 때
“식민지 시대의 환경 속에서 일본 군사체제에 편입된 사람”
정도로 보는 게 가장 무리 없는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1945년
해방이 됩니다.
그런데 박정희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됩니다.
일본군·만주국군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경력은 그 등시 주류에 편입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좌우 대립이 극심했습니다.
1946~1948년
박정희는 해방 이후 좌익세력과 연결됩니다.
형 박상희의 죽음과 당시 남한의 정치·사회적 혼란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형이 죽어서 남로당에 들어갔다.”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당시에는 미군정, 좌우대립, 친일청산 문제,
노동운동, 단독정부 수립 문제 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박정희는 결국 군 내부 남로당 조직과 관련되어 체포됩니다.
그 과정에서 수사에 협조하면서 목숨을 건지고
군 경력을 이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박정희는 평생 하나의 이념만 일관되게
밀어붙인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본 제국의 군인에서 시작해서 해방 후 좌익과 연결됐다가,
이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국가를
만든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박정희라는 사람을 이념적 순수성보다는
현실적인 국가운영과 권력에 상당히 민감했던
사람으로 보는 편입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터집니다.
이 시기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살아남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던 시기입니다.
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반공이 국가의 핵심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박정희 역시 이후 강력한 반공주의자가 됩니다.
과거 좌익과 연결됐던 사람이 훗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정권을 만든다는 점은
상당히 역설적인 부분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라는 점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61년 — 5·16
여기부터 박정희 평가가 본격적으로 갈립니다.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장악합니다.
말 그대로 군사쿠데타입니다.
이건 경제성장과 별개로 명확한 사실입니다.
민주적 정부를 군사력으로 무너뜨린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분명한 잘못입니다.
5·16 이후 군부는 입법·사법·행정을 장악했고
군정이 시작됩니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했고
장면 정부가 제대로 국가를 운영하지 못했다는
당시 상황도 같이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쿠데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고요.
상황 설명과 정당화는 다른 문제니까요.
1962~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합니다.
경제개발 5년계획을 추진하고 국가가
금융과 산업에 강하게 개입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말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자본도 부족했고 산업기반도 약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국가의 인력과 자원을 한 방향으로 몰아
경제성장을 추진한 것은
박정희의 분명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도
“박정희 혼자 대한민국을 일으켰다.”
이렇게 보는 것은 과장입니다.
관료, 기업가, 노동자, 기술자, 국민들의 노력도 있었고
미국·일본 등 국제환경도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역할은 이걸 국가 차원에서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1965년 — 한일국교 정상화
한일국교가 정상화됩니다.
당연히 당시에는 엄청난 반발이 있었습니다.
식민지배의 기억이 아직 생생했으니까요.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경제적인 실리를 선택합니다.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자금과 차관 등을 확보하면서
경제개발에 활용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박정희의 현실주의적인 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감정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선택한 겁니다.
그 선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상당히 냉정하게 판단하는
스타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6~1968년
경제개발은 계속됩니다.
동시에 북한과의 긴장도 상당했습니다.
1968년에는 청와대 습격 시도와
푸에블로호 사건 등이 발생합니다.
박정희는 경제력과 국방력을 동시에 키우는 방향으로 갑니다.
박정희의 기본적인 생각은
“일단 나라가 강해져야 한다.”
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경제적으로도 강하고 군사적으로도 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게 이후 박정희 정치의 핵심적인 사고방식이 됩니다.
1969년 — 3선 개헌
여기서부터 암이 점점 명확해집니다.
박정희는 3선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엽니다.
경제개발과 별개로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헌법을 바꾼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은 변호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경제성장이 성공했다고 해서 장기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1970년
대한민국 산업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됩니다.
고속도로, 산업단지, 수출산업, 새마을운동 등이 추진됩니다.
중화학공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기반도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동시에 노동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낮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있었고
1970년 전태일 사건은 당시 노동환경을
상징하는 사건이 됩니다.
즉,
나라 전체는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당한 희생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습니다.
박정희가 승리하지만 정치적 위기는 계속됩니다.
경제성장을 계속 밀어붙이는 동시에
정권에 대한 반대도 강해집니다.
그리고 다음 해 박정희는 대한민국 정치체제를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합니다.
1972년 — 유신
10월 유신입니다.
박정희는 비상조치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중지시키고 기존 헌정질서를 사실상 중단시킵니다.
이후 유신헌법을 만들고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합니다.
여기서는 저는 상당히 명확하게 평가합니다.
독재입니다.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을 위해
강력한 지도체제가 필요했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정당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를 희생시켜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논리로
민주주의 훼손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1973~1974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정치인·지식인 등에 대한
탄압이 강해집니다.
긴급조치가 발동되고 반정부 활동에 대한 처벌이 강화됩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인혁당 관련자 8명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이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입니다.
이 부분은 박정희 정권의 가장 심각한 암이라고 봅니다.
경제개발이라는 성과가 있다고 해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1974년 — 육영수 피살
육영수 여사가 피살됩니다.
박정희 개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 개인의 비극과 정치적 평가를
섞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박정희가 개인적으로 어떤 고통을 겪었느냐와
유신체제의 정당성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1975~1977년
경제는 계속 성장합니다.
중화학공업 육성이 본격화되고 철강·조선·자동차·전자 등
오늘날 한국경제의 핵심 산업들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은 박정희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박정희가 다 했다.”
라고 하면 안 됩니다.
기업가도 있었고, 기술자도 있었고, 노동자도 있었고,
관료도 있었습니다.
국제경제 환경도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그 모든 요소를 국가의 힘으로
한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978년
경제성장에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투자, 물가, 노동문제 등이 누적됩니다.
정치적으로도 유신체제에 대한 불만이 계속 커집니다.
즉 박정희 정권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동시에 정치적·사회적 비용도 계속 쌓이고 있었습니다.
1979년
결국 문제가 한꺼번에 터집니다.
YH무역 사건, 김영삼 제명, 부마민주항쟁 등이 이어집니다.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고
유신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합니다.
부마민주항쟁은 결국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촉진한
결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합니다.
18년간 이어진 박정희 시대가 끝납니다.
그래서 박정희는 어떤 사람이었나?
저는 박정희를 경제만 잘한 독재자라고 보는 것도 부족하고,
반대로 경제를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라고만
보는 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박정희의 가장 큰 특징은
강한 국가를 만들고 목표를 정하면 엄청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능력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능력이 양쪽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경제에서는 엄청난 추진력이 됐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산업화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수출을 늘리고 산업기반을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치에서는 똑같은 능력이 독재로 나타났습니다.
반대세력을 누르고 언론을 통제하고 장기집권을 추진하고
결국 유신체제까지 만들었습니다.
경제에서는 강력한 추진력이었고,
정치에서는 강력한 억압이었던 겁니다.
제가 보는 박정희의 공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강하게 추진한 것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만든 것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한 것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만든 것
국가의 행정력을 경제개발에 집중시킨 것
경제성장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
당시 국제환경을 활용해 외자와 기술을 확보한 것
안보와 경제력을 국가의 핵심 역량으로 본 것이였고
박정희의 과는
5·16 군사쿠데타
3선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
1972년 유신체제
언론과 정치활동에 대한 통제
긴급조치 등 기본권 제한
반정부 인사에 대한 국가폭력
인혁당 사건 등 심각한 인권침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경제성장의 비용과 과실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던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를 평가할 때 경제와
민주주의를 서로 퉁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를 성장시켰으니까 독재도 괜찮았다.”
이것도 틀렸고,
“독재자였으니까 경제적 성과도 전부 부정해야 한다.”
이것도 틀렸다고 봅니다.
잘한 건 잘한 대로 평가하고 잘못한 건 잘못한 대로
평가하면 됩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박정희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북한처럼 됐을 것이다.”
이것도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고,
“박정희가 없어도 똑같이 경제성장했을 것이다.”
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박정희 집권 이후
대한민국이 매우 빠르게 산업화됐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정희를 이렇게 평가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매우 강하게 가속한 지도자였지만,
그 산업화를 추진한다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권위주의 지도자.”
결국 박정희의 가장 큰 장점과 가장 큰 단점은
같은 곳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국가를 강하게 움직이는 능력.
그 능력이 경제개발에 쓰였을 때는 엄청난 추진력이 됐고,
정권 유지에 쓰였을 때는 독재가 됐습니다.
그래서 박정희를 영웅으로 만들 필요도 없고
악인으로만 만들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희생시켰는지를
따로 놓고 보는 게 가장 객관적인 평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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