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 이야기
어린 시절 어르신들이 여수 가서 돈자랑 말고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 그러셨다.
항상 라이벌인 경상도도 만만치 않았다.
만석꾼이란 매년 쌀 1만석 이상을 수확하는
최상위층 부자를 뜻한다.
조선시대 모든 경제 가치는 대동법이 아니라도 쌀로 표현된다.
쌀 1석은 지금 도량으로 160Kg이고 만석꾼은
매년 1,600톤 이상 쌀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사람이다.
부자도 3대 이상 지나면 망한다지만 경상도 경주 최부자집은
만석꾼 12대가 이어졌고 청송 송소고택 심가네는 9대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와 토지 농지개혁으로 그나마 12대와 9대로 끝난거다.
만석꾼은 상인 또는 거상 장사 꾼과는 구별되었다.
농사로만 결실을 맺고 수확하고 만석꾼,천석꾼, 백석꾼이 되는거다.
고려 말기 문하시중 심용이란 사람이 있었다.
아들이 둘인데 장남 심덕부는 무신으로 키웠고
둘째는 심원부는 이제현 문하에서 문신으로 자랐다.
알다시피 심덕부 아들이 세종대왕 장인 심온이고
소헌왕후가 손녀이다.
동생 심원부는 고려 5은이며 (야은 길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악은 심원부) 두문동에 은거하며 끝까지 조선 출사를 거부했다.
아들 3형제에게 조상 선산 청송으로 가서 농사 짓고 책 읽고 글쓰며
벼슬은 경계하고 피하라 유언했다.
형 심덕부 자손들은 도성에서 출세가도를 달렸고
동생 심원부 후손들은 경상도에서 농사나 짓고
벼슬길은 기피했으며 영조시대 심원호 직계손 심처대가
농지 개척, 개간과 농사로만 만석꾼이 되니 믿기 힘든 기적이었다.
심처대 7대손이 건축한 집이 99칸 송소고택이다.
같은 청송 심씨여도 심덕부 자손은 서울,경기에 뿌리를 내렸고
경상도 지역의 심씨들은 거의 심원부 후손들이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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