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규의 죽음과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고 쓴 일기
한 이혼위기 부부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선 현재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출연자를 대상으로 어릴때의 기억을 반드시 끄집어낸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볼때도 법륜스님 역시 누군가의 심리가 불안하게 느껴지면 '어릴 때 무슨일 있었어요?' 하고 묻는다.
세살버릇 여든간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고 하더라. 명리에 대한 책을 읽어봐도 그렇다. 명리의 원리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들이마시는 호흡에 서려있는 기운이나 지구의 장(field)이 그 아이의 평생의 기운을 좌우한다고 명리는 설명한다. 당연히 처음읽는 좋고 심오한 이야기들은 다 헛소리로 느껴지기 때문에 나 역시 처음 읽을땐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세살버릇 여든가듯, 법륜스님은 아이의 첫 3년이 너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시기에 충분히 사랑을 못받고, 관심을 못받으면 커서 흔히 말하는 사랑고파병, 관심고파병이 생기기 쉽고, 그 시기에 너무 혼나면 꾸중을 두려워하고 자꾸 피하게 된다고 한다. 즉 지금 나의 거의 모든 문제는 사실 나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일 가능성이 크다는거다.
정말 첫경험은 너무 중요하다. 모든 처음은 소중하다.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란 소리는 뭐든 크고 심각하게 받아들인단 소리다. 감수성이 언제 풍부하냐 고 물으면 당연히 어린 시절이다. 거의 '어릴수록' 감수성은 풍부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뭐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든 익숙해지면 평범해진다. 아무리 맛있는것도 매일 먹으면 익숙해지고, 아무리 힘든것도 매일하다보면 덜 힘들어진다. 그것들이 익숙해지고 난 후엔 처음처럼 진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처음의 기억은 평생 그것에 대한 기억을 좌우하기도 한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50대 후반처럼 보이는 중년을 넘긴 아저씨가 스타크래프트를 보고 있었다..
이혼위기 부부를 다루는 그 프로그램에선 아주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들의, 그 남편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권위적이었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혼위기의 남편들은 가정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살아가지만 그들의 아버지 앞에선 한없이 작은 꼬마어린이로 변한다. 단순히 자신의 아버지인척 연기하는 사람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눈물흘리며 '아버지.. 제게 왜 그러셨어요? 전 아버지가 여전히 너무 무서워요.. 그때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라고 묻는다. 따져묻지도 못하고, 어리고 겁많은 소년처럼 물을 뿐이다. 그 시뻘겋게 드러난 상처를 가진채로 그들은 자라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됐고, 누군가의 남편이 됐다. 여전히 그 상처는 시뻘겋게 드러나있어 누군가의 손이 닿으면 너무 아파서 순간 온몸을 움츠리곤한다. 그렇게 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그 상처를 타인에게 이식한다.
난 언제부턴가 어른인척 하면서, 어른답게 말하고, 어른같은 말투로 말하는 어른들에게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봤다. '아.. 사실 여전히 그대로구나.. 그 상처를 가진채로 그대로 자랐구나..'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그대로 자라난다.
지금은 성인이 됐다고 각자 서로의 체면은 지켜주고 해서 그렇지, 다시 조금만 어릴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야생의 모습이 나오면 미숙하고 바보처럼 되어버릴 어른들이 많다. 그저 그 때에 비해서 각자가 각자를 지킬 방법을 이제 좀 배워서 서로 건드리기 어려워진거지,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잘 모르던 어린 시절로 지금의 생각 그대로 돌아가면 우리는 대단히 미숙해질거다. 사실 우리는 모두 다 여리고 상처많은 소년일뿐이다.
최근 한 유튜버가 죽었다. 난 배인규라는 사람을 지지하진 않았지만 자주 봤다. '겁많은 개가 소리 지른다'는 말을 알곤 있었지만 배인규라는 사람도 겁이 많은 개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난 그 사람이 강해보였고, 억세보였다. 근데 그가 죽고나서 그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는 말은 조금 달랐다. 그는 누구보다 약했고, 여렸다고 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것을 너무도 어려워했고 두려워했다고 했다. 천국에 가지 못할까봐, 구원받지 못할까봐 떨었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기억에 평생 아파했다고 했다. 그리고 떨어져 지냈지만 자신의 어린아들에게 멋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세상에 악이 있는가? 난 배인규가 세상에서 했던 행동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가 상처준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했던것이 악이라기엔.. 그가 가진 상처와 그 사람의 아파했던, 그의 고통을 같이 떠올려 볼 때 그의 모습은 '위악'으로 표현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난 모든 악은 위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착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됐던 사람들이다. 착하고 싶지만 너무 아팠던 사람들이다.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다.
악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만 착하고 싶다는.. 그 어려워보이는 마음보단 일단 오늘 상처받기 싫다는 마음이 더 앞설 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남을 짓밟고, 누군가는 먼저 상처를 준다. 어쩌면 악은 악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약한 자신을 지키려는 저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