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학자의 눈으로 본 조지 워싱턴
청말의 관리였던 서계여(徐繼畬)가 지은 세계사+지리서인 영환지략(瀛環志略)에 등장하는 조지 워싱턴에 관한 기사를 정리해 봤습니다.
넷상에서는 보통 마지막 평론(按)이 잘 알려져 있죠.ㅎ
有華盛頓者〔一作兀〕興〔騰又作瓦乘敦〕米利堅別部人生於雍正九年十歲喪父母教成之少有大志兼資文武雄烈過人嘗為
英吉利武職時方與佛〔郎〕西〔搆〕兵土蠻寇鈔南境頓率兵禦之所向克捷英帥沒其功不錄鄉人欲推頓為酋長頓謝病歸杜〔門〕不出至是眾旣畔英強推頓為帥時事起倉卒軍械火藥糧草皆無〔刪:無〕頓以義氣激厲之部署既定薄〔其大城時英〕將屯水師於城外〔刪:忽〕忽大風起船悉吹散頓乘勢攻之取其城後英師大集轉戰而前頓軍敗眾〔恇〕怯欲散去頓意氣自〔如收合成軍再戰〕而〔克由是血〕戰八年屢蹶屢奮頓志氣不衰而英師老矣〔佛郎〕西舉傾國之師渡海與頓夾攻英軍西〔刪:西班〕班牙〔刪:牙荷〕荷蘭〔刪:蘭〕亦〔刪:亦勒〕勒兵勸和英不能支乃與頓〔刪:明〕盟畫界址為〔隣〕國其北境荒寒之土仍〔屬〕英人南界膏腴之土悉〔刪:以〕以歸頓時乾隆四十七年也頓既定國謝兵柄欲歸田
“화성돈(華盛頓)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명올흥등(兀興騰)이라 하고 또와승돈(瓦乘敦)이라고도 하였다. 미리견(米利堅)의 한 지역 사람이었다. 옹정 9년에 태어나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큰 뜻이 있었으며 문무의 자질을 겸비하여 굳세고 장렬함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
일찍이 영길리(英吉利)의 무관이 되었다. 당시 영국이 불랑서(佛郎西)와 전쟁 중이었고 토착민이 남쪽 국경을 침범하자, 워싱턴이 군사를 이끌고 이를 막아 싸우는 곳마다 승리하였다. 그러나 영국 장수가 그의 공을 덮어 기록하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이 워싱턴을 우두머리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그는 병을 핑계로 물러나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사람들이 이미 영국에 반기를 들자 억지로 워싱턴을 추대하여 장수로 삼았다.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군기와 화약, 군량이 모두 없었지만, 워싱턴은의기(義氣)로 사람들을 격려하였다.
…영국군과 싸우다가 패하여 사람들이 두려워 흩어지려 하였으나, 워싱턴은 태연하게 군사를 다시 수습하여 재차 싸워 승리하였다. 이로부터 8년 동안 피흘려 싸우며 여러 번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났으니, 워싱턴의 뜻과 기운은 쇠하지 않았고 영국군은 지쳐갔다.
불랑서가 온 나라의 군사를 바다 건너 보내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을 협공하였으며, 서반아와 하란도 군사를 내어 화의를 권하였다. 영국은 더 버틸 수 없어 워싱턴과 맹약을 맺고 국경을 정하여 이웃 나라가 되었다. 북쪽의 황량하고 추운 땅은 여전히 영국에 속하고, 남쪽의 기름진 땅은 모두 워싱턴에게 돌아갔다. 이때가 건륭 47년이었다.
워싱턴은 나라를 안정시킨 뒤병권을 사양하고 전원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頓曰得國而傳子孫是私也牧民之任宜擇有德者為之仍各部之舊分建為國每國正統領一副統領佐之……
各國正統領之中又推一總統領專主會盟戰伐之事各國皆聽命其推擇之法與推擇各國統領同亦以四年為任滿再任則八年……
“워싱턴이 말하였다.
‘나라를 얻어서 그것을 자손에게 물려준다면 이는 사사로운 것이다(得國而傳子孫是私也). 백성을 다스리는 임무는 마땅히 덕이 있는 사람을 골라 맡겨야 한다.’
이에 각 지역의 옛 구분에 따라 나라를 세우고, 각 나라에는 정통령(正統領) 한 명을 두고 부통령(副統領)이 보좌하게 하였다. …
각 나라의 정통령 가운데 다시 한 명의총통령(總統領)을 뽑아 회맹과 전쟁 등의 일을 전담하게 하고 여러 나라가 모두 그 명령을 따르게 하였다. 그를 뽑는 법 역시 각 나라의 통령을 뽑는 방법과 같았으며, 임기는 4년이고 재임하면 8년이었다.”
按華盛頓異人也起事勇於勝廣割據雄於曹劉既已提三尺劍開疆萬里乃不僭位號不傳子孫而創為推舉之法幾於天下為公駸駸乎三代之遺意其治國崇讓善俗不尙武功亦迥與諸國異余嘗見其畫像氣貌雄毅絶倫嗚呼可不謂人傑矣哉
“논한다.
워싱턴은 비범한 사람이다.
거병할 때의 용맹은진승(陳勝)과 오광(吳廣)보다 뛰어났고, 땅을 차지하여 세력을 세운 웅략은조조(曹操)와 유비(劉備)보다 뛰어났다.
이미 삼척검을 들고 일어나 만 리의 강토를 열었으면서도, 왕의 지위를 참칭하지 않았고 자손에게 물려주지도 않았다.
도리어추거(推舉)의 법, 곧 사람을 뽑아 통치자를 세우는 제도를 창설하였으니,
거의 ‘천하가 공공의 것[天下爲公]’이라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점차 삼대(三代)의 옛 뜻에 가까워졌다.
그가 나라를 다스림에는 겸양을 숭상하고 풍속을 좋게 하였으며, 무공을 숭상하지 않았으니 또한 여러 나라와 크게 달랐다.
나는 일찍이 그의 초상을 보았는데, 기상과 용모가 웅장하고 굳세어 비할 데가 없었다.
아아!
어찌 그를 인걸(人傑)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계여가 본 조지 워싱턴이 대단히 유교적인 이상군주라는게 재미있는 점이죠.ㅎ
"천하위공의 경지에 이르렀다"거나 "삼대의 유의에 가까웠다" 같은 말은 어마어마한 극찬입니다.
영환지략에는 조지 워싱턴에 관한 기사가 하나 더 나옵니다.
멕시코를 소개하는 항목이죠.
墨西哥擁土自擅全效米利堅而治忽殊途顯晦異轍則無華盛頓其人以為之渠也立國規模固全在乎創始之人哉
“멕시코는 영토를 차지하여 독립하고 미국의 제도를 전적으로 본받았으나, 나라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은 서로 다른 길을 갔고 흥망의 자취 역시 달랐다.
이는워싱턴과 같은 사람이 있어 그 지도자가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세울 때의 규모라는 것은 참으로창업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멕시코와 미국의 차이를 조지 워싱턴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봅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영웅론적 사관으로 읽히겠지만 이 또한 사실은 대단히 유교적인 관점이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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