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죽으면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세종은 왕자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일을 시키고 싶었다.
첫째 왕자 세자 문종은 무조건 해야되는거고
둘째 수양대군과 셋째 안평대군도 많이 부려 먹었다.
세종은 다섯째 광평대군을 특히 기대했다.
어린 나이에 한글 창제 작업에도 동참시켰으나 19세에 요절했다.
다음해 7남 평원대군이 18세에 요절한다.
소헌왕후 심씨는 8남 2녀를 낳고 거의다 장성시켰다.
그당시 소유아 사망율로는 거의 불가능한 기록이다.
장성한 두 아들을 연달아 잃고 어미는 버티지 못하고 사망한다.
그리고 남편 세종대왕도 3년여 지난 1450년 붕어한다.,
다행히도 할머니 소헌왕후와 할아버지 세종은
유일한 적자 세손 단종의 탄생과 성장을 어느 정도 보았다.
문제는 단종 낳고 모후 세자빈 권씨(훗날 현덛왕후)가
다음날 산후병으로 사망한거다.
문종은 세종 실명, 당뇨 등 건강 악화로 10년 가까이
대리청정하고 아내를 잃고 모친 3년상, 끌나니 부친 3년상.....
효심 충만 원칙주의자 문종은 몸이 망가질때로 망가졌다.
야사에 이런게 있다.
육식을 워낙 좋아하던 세종은 아버지 태종 상치를때
몰래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상중엔 육식을 금한다니 유교와 성리학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뭐가 다를까?
그렇게 대리청정해줄 할머니, 어미 없이 문종이 붕어하고
단종은 11살에 어린 나이에 즉위한다.
문종은 죽기전 친동생 수양대군, 안평대군, 금성대군에게
어린 조카를 부탁하고 고명대신 김종서와 황보인에게 당부한다.
단종은 4살부터 제왕 수업을 받았다.
틈틈히 할아버지 세종도 가르쳤다.
할머니 소헌왕후도 물고 빨고 했고
그리고 6살 많은 친누이 경혜공주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무엇보다 세종대왕 후궁 혜빈 양씨가 젖을 물리며 전담으로 키웠다.
계유정란? 차라리 유정란이라고 해라.
조선 역사에 유일하게 명분이 없는 변란이라 생각한다.
사후 수양대군 주장은 안평대군이 김종서, 황보인과
작당하여 안평을 왕으로 역모를 했다는 거다.
그렇게 수양의 거사는 성공하고 김종서,황보인을'
척살하고 한명회의 살생부대로 명단대로 다 죽인다.
친동생 안평을 강화로 유배보내고 결국 사사시킨다.
여기까지는 그렇가 치자.
성삼문 등 사육신 일부는 김종서의 독단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수양이 그런 순수한 마음이었다면 제왕 자리를 양위를 받나?
이제 보니 시커먼 역심이었다고 사육신들은 생각한거다.
대중이 생각해도 제3자가 생각해도 합리적 추론이다.
수천년 역사에 양위를 받고 살려준 기록이 있나?
타국을 정복하고 살려준적은 있어도 같은 나라에서
양위받고 살려준 적은 없다.
게유정난부터 단종은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다.
권력을 다쥔 김종서와 황보인의 안일함을 탓해 봐야 소용없다.
정몽주와 정도전도 비슷하게 당했다.
권력이 있던 정몽주도 제자 이방원이 자길 죽일지 몰랐다.
정도전도 남은 집에서 호위 무사도 없이 술잔치하다
숙부라 부르던 이방원에게 목이 잘릴줄은 몰랐다.
그나마 이방원은 수양에 비하면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개국에 1도 공이 없는 막내 동생 방석을 세자로 세웠는지?
수양대군은 형 문종과 아우 안평에게 컴프렉스가 있던거 같다.
사실 문종과 안평보다 덜 잘나지 않았나?
수양대군이 인간 같지 않은 이유를 대본다.
1.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이용했다.
2. 체포도 심문도 없이 무조건 척살했다.
3. 조카를 협박하여 강제 양위를 받았다.
4. 양위한 상왕을 폐위하고 노산군으로 강등했다.
5. 패륜적으로 친동생 안평과 금성 그리고 이복 형제들을 죽였다.
6. 문종과 10여년전 죽어 합장된 왕릉을 파묘해 형수 관을
서해 바닷가에 버렸다.
7. 기어코 조카를 죽이고 시신도 수습 못하게 했다.
8. 아버지 세종대왕 부탁으로 단종을 젖물리고 키운
아버지 후궁 혜빈 양씨와 자식들을 죽였다.
9.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여흥민씨, 청송 심씨를
거의 멸족시켜가며 권신과 척신을 경계했는데
계유정난 공신 한명회, 홍성윤, 신숙주, 정인지 등
권신과 훈구파 그리고 외척과 간신 유자광을 키웠다.
10. 직계로 연산군, 선조, 인조같은 백해무익들을 낳았다.
조선은 연명만 했지 사실상 여기서 끝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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