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이 된 죄수들의 땅, 호주

1789년 어느날, 런던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신대륙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해 출항하는 줄리아나호는 죄수들을 나르는 호송선이었다. 배 안에는 여성 죄수들이 가득했었다. 그 안에는 13세의 소녀 메리 웨이드도 있었다.
줄리아나 호는 10개월의 항해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 도착한다. 항해 도중 많은 죄수가 죽었지만 메리 웨이드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죄수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린 죄수까지 호송선에 태워져 머나먼 신대륙으로 보내졌을까? 바로 가난이 죄가 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많은 노동자가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에 몰려들었다. 다만 도시 빈민들의 생활은 그만큼 점점 척박해졌다.
결국 도시빈민들의 경범죄도 높아져만 갔다. 빵을 훔치거나 옷을 훔치는 등 각종 생계형 범죄가 자주 발생했고 런던의 감옥은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죄수들로 미어터졌다.
당시 런던에선 부족한 감옥을 대체하기 위해 템스강 하구에 감옥 형태의 선박을 띄어놓고 그곳에 죄수들을 가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걸로도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은 새로운 대안을 떠올렸다.
바로 새로 발견한 신대륙인 오스트레일리아였다. 영국은 호주를 발견하고 그곳을 식민지로 개척하고 있었다. 영국은 드넓은 신대륙에 수많은 죄수를 보내면 감옥이 부족한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죄수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식민지를 더 빠르게 개척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해법처럼 보였다. 마침내 1787년 죄수를 포함한 1420명을 태운 11척의 선박이 영국 포츠머스에서 출항했다. 이들은 7개월의 항해 끝에 1788년 호주 시드니에 도착하게 된다. 이 배가 1788년 1월 26일에 호주에 도착했는데 그래서 1월 26일은 현재 호주의 건국절로 기념되고 있다.
이후 계속해서 많은 죄수가 호송선에 태워져 호주에 도착했고 메리 웨이드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메리 웨이드는 옷을 한벌 훔쳤는데 영국 정부는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행히 그 시점에 호주 방법이 등장해서 겨우 유배형으로 감형된 메리 웨이드는 보호자도 없이 홀로 호주로 보내졌으니 그야말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호주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메리 웨이드는 1811년이 되어서야 자유 증서를 받았고, 총독으로부터 24 헥타르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상당히 장수했던 그녀가 사망했을 당시 웨이드는 300명이 넘는 후손을 두었으며 그녀의 후손은 현재 수만명에 달하며, 여기에는 호주의 전 총리 케빈 러드도 포함된다.
케빈 러드의 고조 할아버지와 고조 할머니인 토마스 러드와 메리 캐이블 역시 범죄자였는데 토마스 러드는 유죄 판결을 받은 뒤 1801년 호주로 건너왔으며 메리 캐이블은 1804년 호주로 왔다. 이 둘의 막내아들인 에드워드 러드가 메리 웨이드의 외손녀인 새라 엘리자베스와 결혼했기 때문에 이어진 것이다.

총리 역임한 주미 호주대사, 트럼프 비난 발언 들통나 조기사퇴
Daum | 동아일보
호주 총리 출신의 케빈 러드 주미 호주대사(69)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공개석상에서 질책을 받은 지 약 3개월 만에 대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예정된 임기보다 1년 빠른 올 3월 물러날 예정이다. 12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케빈 러드 주미 호주대사가 2026년 3월 임기를 마치게 됐다”고 밝혔다. 러드 대사는 2007~201
(참고로 케빈 러드는 최근 주미 호주대사로 있다가 반트럼프 발언을 하고 2026년에 사퇴당했다.)
사실 호주를 처음 발견한 서양인은 네덜란드쪽이었지만 이곳을 식민지로 삼고 개척하기 시작한건 영국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제임스 쿡 함장이 있었다.
제임스 쿡은 천문학과 지도 제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제임스 쿡은 여러 섬과 대륙을 구석구석 탐사하다가 호주 동부 해안에 상륙했는데 당시 이 해안이 웨일스의 남부 지형과 유사했기에 제임스 쿡은 이곳을 뉴사우스웨일스라고 명명했다.
영국은 호주가 식민지로 삼을만한 곳인지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상한 곳으로 보여가지고 일단 식민지 개척을 보류하게 된다.
그러다 1783년 미국의 독립이 확정되면서 영국은 자신의 식민지중 중요한 곳이 이탈하게 되면서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하나를 잃으면 새로운 무언가를 들여야 마음이 편안해지기에 결국 영국은 고심한 끝에 호주를 식민지화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영국은 호주가 아무튼 기회의 땅이라고 자기세뇌를 하면서 죄수들을 마구잡이로 호주로 보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영국인 후손들의 땅이 된 호주는 사실 영국의 넘쳐나는 죄수들이 감옥 대신으로 보내져 일궈낸 땅이다. 하지만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쇠락한 영국은 미국에 호주를 넘기게 되고 호주는 미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에도 미국은 호주를 전초 기지로 삼았었다. 호주는 일본의 침공을 막아주는 등 훌륭한 지정학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호주는 영국보다 미국을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1966년에는 화폐도 호주 파운드에서 호주 달러로 바꾸었으며, 1970년대 후반에는 호주 사막 한가운데에 미국과의 합동 비밀 군사기지인 파인 갭이 들어섰다.
파인 갭은 위성 감시 시설로, 실제 미국의 도청 기지가 되었다.
한때 호주는 백호주의를 내세웠는데 백호주의란 백인의 호주를 추구한다는 의미였다. 1973년까지 백인 국가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유색인종의 이민을 억제했던 인종 차별적인 정책이었다.
하지만 과거 백인만 아끼던 호주의 현재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호주는 영국의 대안 식민지로 탄생했지만, 현재 호주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중국 등 아시아의 자본이다. 호주는 결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손을 잡고 버티는 처절한 생존 전략을 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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