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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아주 기적의 아이가 따로 없군.

1990년 11월 내가 태어날 당시 선천성 내이기형으로 좌측 세반고리관과 전정기관이 미분화로 그냥 공동상태로 남았고 우측만 전정기관이 제대로 형성되어 편측이다.
달팽이관은 온전히 형성되었지만 3개월 무렵 버스 타는 모습이 너무 평온해서 태어났을 때부터 고도난청임이 확인되는 편이고. 아버지 품에 안겨있긴 했지만, 그게 비전형적인 반응인진 알 수는 없고 백색소음이 편안할 수도 있지만 대단히 시끄러운 환경임은 분명할텐데.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은 채 손을 잡고 기립자세 조정하는 모습이 나오는 걸 보면 엉거주춤한 게 보여서 잡아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전정기관이 망가진 징후였을 수도 있고. 9개월 언저리에는 한쪽 벽면을 디디고 완전 기립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적어도 수 분 이상 그러고 있는 걸 보면 평형기관 보상작용이 원활한 걸로 보이고.
부모님이 나의 청각장애를 인지한 것은 18개월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확진 이후인데, 그러니까 1992년 6월쯤의 일인 것이고. 그 후로 가족 나들이 사진 등은 1992년 4월에서 11월로 건너뛰게 된다.
1993년 2월 서울 롯데월드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뒤쪽의 조경수반을 보다가 어머니가 사진을 찍으려고 들어올리니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는데, 시각으로 완전 편중된 시절이었던 듯하다. 기준점이 사라지고 갑자기 들어올려지니 격렬한 생존투쟁 반응이 그 후로도 심각하게 토라진 모양새고.
1994년 2월 장애인 등록 이후 구화학교 유치부 들어갔고 청각장애 등급이 처음부터 2급 나온 것 같은데 원래대로라면 1급이어야겠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고. 만 3세경 청음회관에서 보청기를 처방받아서 뭔가 언어를 주입을 한 것으로 인해서 1급이 안되고 2급으로 끌어내려진 갈로 보인다.
1994년 2월 구화학교 유치부에 들어가고 2개월만에 동생이 태어났는데 한동안 어머니가 계시지 않던 공백시기가 기억난다. 아버지랑 같이 생활했던 때가 설마 그 때인진 알 수 없고 TV 뒤편의 110V 220V 변환기가 그 때 기억인지 이후 기억인지는 알 수가 없다. 동생이 4월에 태어났고. 당시 어머니는 막 태어난 어린 여동생을 두고 극심하게 불행한 표정이었다.
언젠가 부산과 광양을 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어머니가 극심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버스 좌석 손잡이를 잡고 고개 수그리는 걱울 보고 "엄마 죽지 마" 이러면서 울었던 일이 있는데 그게 설마 여동생이 태어난 직후 1994년 5월경의 일이었나 싶은 것이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좌석을 절약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부정적인 단어를 어디서 배웠는진 알 수 없지만,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다. 죽는다 라는 개념이 어디서 형성되어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덮어씌워진 것인지는.
구화학교 유치부에서 1994년 2월부터 4월까지 그 고작 2개월 사이에 그렇게나 많은 어휘를 배운건가? 하여간
1994년 후반기면 그렇게 불행할 이유가 없고 1995년도 마찬가지의 일이고 구화헉교 유치부가 해체되고 교육부에 흡수당하던 시기라 햇살언어교육원으로 옮겨간 시기였다곤 해도 재활이 본궤도애 올라갔으니 어머니가 극심한 불행을 느낄 만한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1994년 5월 동생의 출생 직후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서늘하고 추운 5월 밤이라 잠옷을 입은 다섯살짜리 내가 세상 모른채 장난감 갖고 기어다니고 어머니가 불행한 표정한 모습을 언젠가 주말에 들어오던 아버지가 사진으로 찍어서 남은 것이 있다.
하여간 1994년 10월경 구화학교 유치부 교정 어딘가에서 본 무당벌레는 이후 초등학교 때에 다시 회상을 한 것이 기억에 남아있고, 또 당시엔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돌리는 놀이를 했다. 뭔가 이미 당시에 부모들이 모여서 각 집을 찾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정서적 거리가 너무나 멀어져버리고 말았다. 한때 고깃집 붉은 곳 내가 굳이 찾아갈 정도면 보통 관계는 아닐건데도 기억나지 않는다.
1995년 개별언어치료실에 다닐 때는 구화학교 때부터의 여자아이 한 명과 다니곤 했는데 내가 키가 더 커 운운하긴 했다. 그 때 선생이 어느 날인지 내 손톱 쪽에 피부가 들떠서 잔디 하나마냥 돋아나는 건지 고름인지 몰라도 빼려다 실수해서 피가 나는데 나는 괜찮다고 했던 일이 기억난다. 유치원때는 아닐건데 설마 그게.
1996년 유치원때는 가냥 뭐 시소타고 놀고 통나무처럼 생긴 물길에 배를 띄우고 놀고 진자가 와리가리하는거 볼록거울 오목거울 온갖 신기한 것들이 있고 게임도 있긴 할거다. 도대체 포즈를 잡는게 가관인데 위축된 모양새가 잘 안보인다.
초등학교는 1학년때 받아쓰기 때문에 등교 거부하고 아파트 1층 중앙통로 철문 안에 숨어있던 걸 주민이 발견해서 강제로 끌려나갔다. 2학년은 뭔 일인지 부반장이 되었는데 뭘 했는진 모르고 2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독서경시대회가 지필고사 유형일건데 5연속으로 최우수나 우수상이라 언어발달의 지연을 온전히 따라잡았음이 증명된다.
그냥 다 건너뛰고 2000년 12월 26일 우측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집도할 때에 동아대병원 김리석 교수가 집도를 했고 의무기록에 보면 당시 측두골을 뚫고 와우로 진입하자마자 뇌척수액이 분출하는 거셔현상이 있었고 바로 전극을 갑입했고 미각신경 안면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전극이 잘 삽입되었으며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것은 거의 신의 손길이다.
그리고 그 와우 수술 6개월후 언어평가에서 95퍼센트를 찍었다. 통상적으로는 30퍼센트 정도라 하는데, 아마도 그것들은 어린아이들이라서 그럴수도 있겠다. 그래도 확실히 IEM(Innear Ear Malformations) 중에서는 거의 아웃라이어 수치일건데.
하여간 거셔환자가 2006년 당시 케이그로 22명인 걸 보면 성공적 수술은 집도의의 깊은 경험에서 비롯된 기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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