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주말 불의의 사고로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오늘은 그녀의 발인일이다.
지난 일요일 그녀의 빈소에서 눈물 한방울이 안나왔다.
정신을 꼭붙들고 계신 어머님을 뵙고 무한의 슬픔을 느꼈는데도 난 눈물 한방울이 나오지 않았다.
동기들을 여럿 만났다. 오랜만의 서로의 근황으로 반가워하는 마음마저 죄스러웠다.
목이 답답해 술로만 그자리를 축이다 돌아왔다.
월요일 아침 진료실에서 동기들의 카톡인사가 오갔다.
오랬동안 잊고 지냈던 그시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10분 나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모든 진료를 중단한채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건 23년전 겨울 의대합격 자부심으로 가득차있던 그때 입학전 강원도로 떠난 새터에서였다.
수십개로 나눠진 신입생 조편성에서 나와 그녀는 같은 조였고 그렇게 그 2박3일의 새터가 나에겐 모든 시작이었다.
스무살 그땐 예쁘다는게 어떤건지 사실 잘 몰랐다.
까무잡잡하고 동그란 얼굴에 긴눈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눈이 자꾸 갔다.
잘시간 밤이되서 안경을 쓰고 눈이 작아진 그 모습이 귀여웠다.
얼굴도 동글동글 안경도 동글동글 그냥 귀여웠다.
의대생으로 맞은 첫시간들이 너무 기뻐서였는지 그녀가 정말로 예뻐서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그 첫만남에 내기억에 남은건 아직도 그녀뿐이다.
그당시 난 고등학교때부터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눈이가는 그녀에게서 나는 내 눈을 감았다.
그시절 학업으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와서 너무나 많았던 예과 1학년 행사들속에
계속 눈이가도 그녀에게 나는 항상 눈을 감았고 그때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녀는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대부분의 시간엔 남자친구가 있었다.
나 역시 의대생의 마지막 황금기라 느끼는 예과2학년 시간동안
여느 친구들처럼 많은 연애를 했고 즐겁게 놀았다. 학교에 붙어있지않고 그냥 놀았다. 계속 놀았다.
그 일년동안 학교에대한 기억도 그녀에 대한 기억도 없다. 나는 그냥 놀았고 시간은 흘렀다.
본과 1학년 첫학기 우리땐 해부학과 생리학으로 본과생활의 문을 열었다.
강의실 이동없이 다시 고등학교시절처럼 아침부터 앉아서 수업을 듣는 생활이 시작됐고
실습까지 마친 오후부터의 시간은 대부분의 나날을 의학도서관에서 보내야했다.
도서관 자리추첨을 했다. 이번에 뽑은 자리로 오랜기간 칸막이도 없는 의학도서관 책상에 함께 앉아서 심야까지 공부를 해야한다.
누구와 함께 공부하게될지 나름의 긴장감과 기도들이 흐르던 추첨이었던것같다.
나와 같은 책상 옆자리가 그녀의 자리였다. 특별한 감정은 없었는데 반가웠다.
첫순간부터 기억나는 사람이어서 반가웠던건지 좋아서 반가웠던건지 모르겠지만 반가웠다.
여러날들을 바로 옆에 앉아서 심야까지 공부를 했다.
어느날 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싫어하던 도서관에 매일 갔다.
그녀가 있으면 공부라는 힘든게 견딜만 했고 그녀가 자리에 없으면 언제올까 궁금해하며 책을 봤다.
이때 부터였던 것 같다. 밤까지 도서관에 오지않는 날에도 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걸 알게되었다.
공부를 하다가 그녀가 바람을 쐬러나가면 손이라도 씻으러 따라 나갔다.
매점에 무언갈 사러 내려갈때 꼭 뭐필요한거 없는지 물어봤다.
뭐라도 사다주고 싶었던건지 그냥 그말이라도 하고싶었던건지 그 역시 아직도 모르겠다.
그녀는 상당히 부유했었다.
지방에서 온 나는 그녀를 대할때 항상 서툴렀었다. 나와는 다를것 같은 사람.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이 소녀를 바라봤을때 그랬을 것 같았다.
어린 내가 겉으로 센척해도 한없이 조심스러웠던 그런 마음이 었던것 같다.
수개월이 흘러 너무나 커져버린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었다.
함께한 시간과 나눈 얘기들이 많아 졌지만 도저히 시작을 제안할 용기가 나지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꽃선물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익명으로.
그녀를 기쁘게할 선물은 내가 줄수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서 좋아할것 같은 꽃을 골랐다.
학교앞 꽃집 사장님과 너무 친해졌다.
"여자친구 좋겠네?"
"여자친구아닙니다"
"아직도 여자친구 아니야?"라는 질문을 매번 들었다.
어떤날은 시험이 끝나서 어떤날은 좋은일이 있어서 그리고 어떤날은 날씨가 좋아서
그렇게 의과대학 강의실엔 자주 꽃배달이 왔다.
내친구들과 그녀의 친구들은 나의 소행인 것을 이미 다 알고있었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내 친구들이 큰일 났다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곧 남자친구가 생길것 같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만나러 학교에 온 사람이 나타났다고 했다.
가까운 학교였고 학교 간판도 우리보다 좋았으며 무엇보다 부유하다했다.
나는 그사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을게 하나도 없다는걸 깨닫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이었다.
모든면에서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이었고 내가 가진건 옆에 앉아서 보낸시간과 오랜 꽃선물뿐이었다.
고백을 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나는 아주 부드럽게 그녀에게서 사라져야했다. 하지만 고백은 하고싶었다.
마지막 꽃선물을 준비했다.
가장 예쁘고 풍성하게 준비했고 그안에 영화티켓을 두었다.
역시 익명으로 말이다.
그녀가 나타나 준다면 진심을 말할생각이었고 아니라면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다.
그날이 왔고 익명이어도 모든걸 알고있는 듯한 그녀의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 오늘 어디가?'
'그냥 밖에'
라고 대답하고 난 홀로 극장에 갔다.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극장에 갔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그녀는 만날 수 없었고
난 두시간동안 시원하고 개운하지만 슬픈 눈물을 흘리며 그 영화를 봤다.
포기속에서 끝날때까지라도 나타날 수 있을까하는 기도는 이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의과대학 처음이자 마지막 짝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한두달후 그녀가 그사람과 이별했단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모든 용기와 에너지를 소진해 버린 후였다.
공교롭게 그 본과 1학년 도서관에서 보낸시간이 나는 의대 생활중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고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잃어버린 본과 2학년을 마치고 나는 휴학계를 냈다.
그녀를 잊고 싶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학교를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던건 확실히 기억난다.
그저 지쳐버린 나를 추스리기위해 1년간 작은 극단과 이곳저곳에서 연기자 생활을 했고
복학전에 의대생 대출을 받아 배낭 하나들고 석달간 유럽을 다녀왔다.
세월이 흐르고 군대문제가 꼬인 나는 수련 플랜 자체가 꼬여버려 미용수술을 하는 일반의로 개업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근처의 대학에서 전공의란 이야기를 들었다.
신이 돕는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세월이 지나 마음이 추스러진건지 젊은시절 개업부심으로 거짓 치유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생각났고 다시 그리워졌다.
다행이 아직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연락을 하고싶어서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카카오톡 메신저를 썼다지웠다를 수십번 한것같다.
그러던중 그녀의 결혼 예정소식을 들었다.
모든 용기가 사라졌다. 혹시나 했던게 결국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온몸의 힘이 쭉빠졌다.
그런데 수개월 후 그 결혼은 취소되었고 수년전과 마찬가지로 제풀에 지쳐서 물러나는 실수를 하고싶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후 카카오톡으로 졸업 후 처음 연락을 했다.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로 사진을 보면서 문자를 할수있다는게 너무 고마운일이란걸 그때 알았다.
2~3주동안 2~3일에 한번씩 먼저 연락을했다.
비가온다. 점심은 먹었냐. 그병원 구내식당은 뭐가나오냐
지금 동네에 이런식당 생겼더라. 시덥잖은 잡다한 얘기들로 변죽을 울렸다.
보자보자하는데 시간이 안맞았다.
지나고 보니 신규개원의와 바이탈과 전공의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게 정상이었던것 같다.
연락을 나누는 동안 자연히 많은 생각을 해보게되었다.
약속이 미뤄질수록 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나름의 아픔이 있을 그녀에게 다가서려면
영원히 모든걸 다줄 준비로 다가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결국 약속을 잡지 못했다.
이게생겼다 저게생겼다 얘기만 실컷 얘기해놓고 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어린시절엔 내가 부족하다는 마음에 용기가 무너졌고
그땐 아픔을 내가 다 해결할수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용기가 무너졌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멋지고 멋진 연애와 삶에 나는 갈아넣을 것이 고작 몸뚱아리뿐인 젊은 녀석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서 영원히 물러났다.
처음 물러날때 나던 눈물이 이번엔 흐르지 않았다.
이제 어른이되어서 그런것 같았다.
수년이 흘러 그녀는 훌륭한 두번의 결혼과 중간 한번의 이별이 있었다 들었고
어린시절 내가 생각했던대로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할 사람에게서 역시 물러난게 현명했다고 내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았다.
마흔이 되니 동기회가 만들어 졌다.
그녀는 대학에있었다. 훌륭한 그녀와 어울리는 삶이 었다.
나는 한동네에서 10년째 살아남는 중이었다.
매일이 치열했지만 그시절보단 여유가 생겼다.
대학시절 같이살던 친구연락이 왔다.
나 갈건데 너도 가자. 걔도 온대.
그녀가 궁금한건지 그시절이 그리운건지 모르겠지만 가고싶어졌다.
진료를 마치고 늦게 그자리에 갔다.
첫동기회였어서 다들 오랜만이라 도착한순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건너편에 그녀가 보였다.
아무생각 없었는데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슨말인지 기억나지 않는 언어로 내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학생회 홍보담당이었다.
학생때부터 대외인터뷰로 어디서 말하는건 자신있었고
공중파건 유튜브건 어디서든 긴장없이 말은 잘한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고 털썩 앉아버렸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말을 걸지 못했다.
같은 테이블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가까이가면 숨이 턱턱 막힐것 같은 느낌이었다.
같이 살던친구가 열심히 다가가서 내 대신 근황도 묻고 즐겁게 얘기했다.
정신이 마비된채로 모임을 마치고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나이먹었는데도 걔는 예쁘더라."
그렇게 또 수년이 흘렀다.
이번 동기회에는 인원이 소규모였다.
그동안 현생이 바빠 참석을 못했는데 집근처로 모이게되어서 이번엔 나가기로했다.
그녀의 참석소식을 듣고 이제는 편안히 만날수있겠단 생각이 들어 발길을 재촉했다.
이젠 더 세월이 흘렀으니 아이 키우는 얘기도 나누고 학생때 얘기도 즐겁게 나눌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아이가 많았던 그친구는 빠른 귀가를 한 뒤였다.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다음에 만나서 웃으면 되니까.
같이 나이들어가는 친구들에게 시간은 분명 점점 많아질테니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세상에서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나는 차마 명복을 빌어주는 문구조차 쓸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그녀의 사진앞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왔다.
마흔이 넘어서도 과연 사랑이란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항상 고민하게된다.
하지만 그때 그 서툴렀던 청춘의 시절 좋아했던 마음 그리고 아팠던마음은 항상 생생하게 가지고있다.
우리의 삶이 끝난 뒤에 다른 세상이 있다면 꼭 한번 만나고싶어
너의 이번생이 정말 행복했길 진심으로 바라고 내삶이 끝날때까지 널 잊을수 없을거야
보고싶고 그리울꺼야.
꼭 다시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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