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독살설도 요즘엔 음모론 취급 받더군요
역사적 음모론들 중엔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던 사건이고
지금도 대중들에겐 그렇게 인식되지만
요즘엔 사학계와 의학계에서는
병사로 보는 관점이 대세라고 합니다
1. 칠공에서 피를 흘렸다
소현세자 독살설의 가장 큰 핵심인데
의학계에선 사후 이 증상을
전형적인 패혈증 증상으로 해석합니다
소현세자의 기록을 보면
당뇨를 심하게 앓은 기록들이 많은데
(잦은 갈증과 저체중)
(쌀밥 먹고 기절하는 등등)
청나라 심양의 8년간 볼모생활로 인해
만성질환이 많이 악화됐고
급성 합병증과 패혈증을 사인으로 봅니다
2. 강빈의 사사와 손자들 박해
소현세자 독살설의 또 다른 핵심으로
며느리 강빈을 사사하고
손자들을 전부 제주도 귀양 보냈는데
그중 둘이 죽어버리죠
인조가 엄청 잔혹한 싸패라고 욕을 먹는데
소현세자가 죽어버림으로 인해
정통 후계 구도가 완전히 뒤틀려 버렸는데
왕위 승계 1~3위는 손자들입니다
봉림대군에게 물려주기 위해선
귀양보낼 수 밖에 없었고 그중 손자 둘이
돌림병으로 죽어버린 거죠
(직접 죽인건 아니지만 미필적 고의는 맞음)
셋째는 나중에 귀양이 풀리고
왕족대우를 받아서 자손을 이어가고요...
강빈은 성정도 드센 편인고
왕위 계승권을 순순히 내줄 리가 없기에
후대의 불씨가 될 게 뻔해서
후계를 위해선 사사할 수 밖에 없던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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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현세자는 병사한게 맞고
이후 그 가족들에 대한 냉혹한 처결은
봉림대군 승계를 위한
왕권 행사라고 해석하는게 대세더라고요
실제 봉림대군은 왕이 된 후로도
정통성 문제로 평생 발목이 잡히던 실정이고
효종 사후 현종대의 예송논쟁도
결국 그 뿌리가 여기부터 시작이긴 합니다
하여튼 소현세자는 병사 (의학계)
사후 가족들 처결은 필수불가결 (역사계)
이즘엔 이게 거의 정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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